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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상상력- 박기진의 발견(공간화랑)에 관하여

 

 

박기진(1975~)은 자신의 존재를 둘러싼 시공간에 대한 관조의 사유의 결과를 바탕으로 모종의 스토리 구조를 창작한다. 대상을 바라보는 진지하면서도 섬세한 그의 시선은 실재하는 대상이 가진, 잘 드러나지 않지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측면을 발굴해낸다. 그가 구축한 스토리는 실제와 허구가 혼합된 에세이의 형식이다. 그의 이야기는 상상력에 기초한 가상의 영역에서 시작하지만 그 흐름은 결국 현실의 영역으로 수렴하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이번 공간화랑에서의 전시에서 보여지는 작품은 물에 대한 작가의 사유에서 비롯되었다. 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브라질에 가 있던 작가는 대서양을 향한 해변에서 뉴욕 맨하탄 풀턴항에 있는 친구와 우연히 통화를 하게 되면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을 연결하는 물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정한 생태적 순환구조를 갖는 물의 본질은 물리적인 한계성을 초월하여 서로를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육지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의심 없이 인지되고 있으나 물이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상력이 가미되었을 때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의 관심은 물의 순환과정으로 이어졌다. 바다라는 거대한 장소를 배경으로 한 물의 영속적 순환구조로부터 분리된 물들이 최후를 맞이하는 곳이 호수라는 것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아프리카의 두 개의 호수, 말라위(Malawi)와 탕기티카(Tanganyika)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 두 호수는 바다를 연상시키는 압도적인 규모와 아름다운 풍광으로 익히 알려져 있지만 우리에게는 막연히 먼 이국의 어느 장소로만 느껴진다. 오래 전 원래 하나의 해연(海淵)이었다가 지각 변동으로 판이 움직였을 때 각각 갈라져 나가며 서로 떨어진 곳에 갇히게 된 것이 이들의 운명이다. 그 물에 원래 살고 있던 ‘시크릿’이라는 물고기는 각각의 호수로 서식지가 분리되면서 상이한 진화의 과정을 거쳐 서로 너무나도 다른 종류의 물고기로 변했다.

 

박기진은 자신의 사유를 기반으로 두 개의 호수를 이어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것이 이번 전시의 주된 모티브다. 그 연결의 한 갈래는 서로의 시선을 잇는 것이다. 박기진은 실제로 수백킬로미터가 떨어져 있는 두 개의 호수에 각각 서식하는 물고기가 수면 위로 올라가 먼 곳을 굽어볼 수 있는 수상 전망대를 구상하여 제작하였다. 정밀하면서도 서정적인 느낌의 드로잉(첨부이미지 참조)과 정밀한 기계적 지식을 기반으로 실제로 기능할 수 있는 수상 전망대가 제작, 설치되어 있다. 다른 하나의 연결은 두 개의 호수의 물을 실제로 잇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드로잉과 영상설치작품 등을 통해 표현된다. 이러한 두 개의 연결을 골자로 하여 전체적으로 물이 갖는 명상성과 각각의 호수에 대한 사유의 결과를 화랑 입구의 설치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전체적인 스토리를 표현하는 작가의 글과 드로잉 등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공간화랑과 소극장 공간사랑은 그가 덧입혀 놓은 새로운 상상력으로 말미암아 원래의 장소성을 초월하여 전혀 다른 장소로 탈바꿈하게 된다. 박기진이 제작 설치한 모든 설치물들과 그 배경이 되는 공간사옥, 그리고 그 안에 개입하는 관람객의 일정한 감응을 모두 포괄하여 완성되는 모종의 세계가 바로 이번 전시의 출품작인 <발견(Discovery)>이 되는 것이다.

 

자연과 세계를 관조하고 그 결과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박기진은 현대 미술의 보편적 토대 위에 서 있는 작가이다. 그러나 대상에 덧입혀져 있는 선험과 인식의 표피를 제거하고 투명하고 순수한 시각으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그러한 관조의 결과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박기진이 가진 분명한 특징이다. 그는 창의적인 상상력과 세련된 조형감각, 그리고 세상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직조해냈다. 그의 작품은 실재하는 대상을 완벽하게 초월한 것도 아니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것도 아니다. 현실의 토대 위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시각적 언어로 치환시킨 그의 작품은 신선하면서도 고전적인 예술적 ‘표현’이다. ⓒ

 

고원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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